콘스탄티노플의 상수도 연대기
지난 20년 동안 끈질긴 탐구는 콘스탄티노플의 상수도라는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풀어냈다. 그 이야기는 494km에 이르는 장대한 서사로, ‘가장 긴 로마의 상수도 수로’라는 증거이자 자부심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의 소박한 운하 기원에서 시작해, 4세기 중반에는 해수면보다 56~57m 높이까지 솟아오르는 거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도시의 국경이 계속 확장됨에 따라,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20년에 걸친 헤라클레스 같은 대역사를 시작했다. 373년 AD에 거대한 수로(수도교)가 완공되며 그 사업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130개의 다리—경탄을 자아내는 보즈도간 수로를 포함—로 이루어진 이 공학적 경이로움은 혁신적인 물 관리에 대한 도시의 헌신을 증언한다. 그러나 이 시대의 분배 수로 흔적은 여전히 알 수 없고, 시간의 모래 속에 묻혀 있다.
비잔틴 콘스탄티노플의 물의 이야기는 440~441년 AD 무렵의 황실 칙령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난다. 하드리아누스 수로의 물이 공중 목욕탕과 황궁으로 흘러가도록 지시한 것이다. 도시는 도시 안에서 급증하는 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했던 셈이다.
이처럼 높은 단계의 수로들은 공공 시설에 물을 공급하는 공급자 역할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시 밖의 주요 저수지들 너머에서 농업을 위한 물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물 절도를 막기 위한 조용한 전쟁을 치렀다.
콘스탄티노플의 수중 저장소
도시에 장식된 약 160개의 문서화된 저수조(시스테른)는 비잔틴과 오스만의 양 시대에 생명의 원천을 저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더 큰 네트워크의 일부 조각인지, 빗물을 지키는 수호자인지 등 정확한 목적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중에는 아나스타시오스와 유스티니아누스의 시대 잔재인 바실리카 시스테른과 빈비르디렉 시스테른이 있었는데, 이들은 규모와 정교한 제작기술 면에서 로마의 선배들보다 더 컸다.
콘스탄티노플의 시스테른 연대기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4세기 또는 5세기 초의 기초 구조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바르의 포위전과 아랍의 침입을 거치면서도 하드리아누스 수로는 버텨냈다. 765년 발렌스 수로의 복원은 르네상스를 알렸고, 1019년경 바실 2세의 갱신은 끊임없는 흐름을 보장했다. 하지만 12세기 중반에는 물 부족의 메아리가 들려왔다.
1453년 오스만 정복 이후, 물의 설계자인 메흐메트 2세는 수중 기반시설을 복원하고 확장했다. 발렌스 수로는 마땅한 보살핌을 받았고, 새로운 시스테른과 분수들이 탄생했다. 지하의 매혹적인 기운을 지닌 바실리카 시스테른은 물의 미로를 헤쳐 나가는 도시의 천재성을 기리는 송가로 서 있다. 1748년에 태어나 벨그라드 숲에서 물을 끌어오던 마흐무드 2세의 수로는, 시간을 통과하며 변이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도시의 모습을 상징한다.
세월이 흐르며 통치자들은 물이 생명을 주는 품에 대해 인정을 아끼지 않았다. 다양한 문명들이 만들어낸 수로, 시스테른, 분수들은 콘스탄티노플의 영혼에 액체의 유산을 새겨 넣었고, 그 이야기는 도시의 돌만큼이나 오래도록 이어져 온다.